나의 인생 이야기 2편

제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자 했던 목적은 다음의 두가지 였습니다.

첫째 : 아이들에게 입시지옥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다. 사람답게 사는법을 가려쳐주는 그런 교육시스템에서 아이들이 자라게하고 싶다.

저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입시지옥을 겪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기때문에 초등학교4학년때부터 과외를 했습니다. 과외선생님은 아주 무서웠습니다. 공포 그자체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과외공부하는데로 갔고 10명정도가 모여서 과외공부를 했는데 조그만 책상에 쪼그리고 앉아서 교과서를 3번씩 돌아가며 있고 참고서를 읽고 그다음에 연습문제를 풀었습니다.

연습문제를 풀고나서 문제가 틀리면 선생님앞으로 나가서 매를 맞았습니다. 자로 손바닥을 맞기도 하고 몽둥이로 히프를 맞기도하고 어떤때는 어금니를 꽉 다물라고 하고는 주먹을 힘껏 내둘러서 쳤습니다. 어른이 있는힘을 다해서 주먹을 휘두르면 맞은 아이는 3~4미터 뒤로 자빠졌습니다. 하루는 뺨을 세게 맞아서 얼굴에 손자국이 뻘겋게 났습니다.

학교에 가니 담임 선생님이 보시고 걱정하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끝내 아무일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어머니에게 보고했고 집에 가니 어머님이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과외선생님이 때렸다고 얘기했습니다. 어머님은 과외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왜 애를 때리셨냐고 물었습니다. 과외 선생님은

"일류중학교에 애를 보내고 싶으십니까? 저를 믿고 맡겨주십시요."

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아무말도 못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입시를 위해서는 모든것이 희생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때부터 저에게는 완벽주의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등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라는 슬로건이 형성이 되었습니다. 학교성적은 올100이었고 항상 전교 1등이었습니다. 2등하는 아이하고는 피튀기게 경쟁하였습니다. 고생은 되었으나 견디고나니까 나름 프라이드도 생기고 뭐든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2년반을 고생했는데 갑자기 중학입학 추첨제가 발표되었습니다. 학교 운동장 한편 철봉 밑에서 한참을 끄억끄억 울었었습니다. 2년반동안 그렇게 모든것을 희생해가며 노력했던 세월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렇게해서 나중에 추첨을 했는데 운이 없어서인지 별로 좋은학교에 당첨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류고등하교 출신이었던 아버지께서는

"똥통학교에 보낼 수 없다. 검정고시해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원이란데를 보냈는데 저는 나쁜학교라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소설책도 읽고 캠핑도 가고 하고 싶었습니다. 떼를 쓰고 우니까 3개월이나 지나서 배정된 학교에 보내주셨습니다.

다른 애들은 3개월전에 입학해서 공부를 했는데 저는 3개월후에 합류를하니 수학, 과학은 제대로 연결이 안되서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과목만 하고 수학, 과학은 아예 포기를 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실컷 놀았습니다.

소설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관에가고, 친구집에 놀러가서 자고, 캠핑을 다니고 했습니다. 3년뒤에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는데 수학, 과학때문에 좋은학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모교에 시험치라고 했습니다. 보기좋게 떨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검정고시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검정고시를 해서 6개월만에 합격하였습니다. 저는 그래도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등하교에 가지말고 대학시험을 보라고 했습니다.

할수 없이 대학시험을 쳤습니다. 아버지는 일류대학인 아버지의 모교에 시험을 치라고 했습니다. 또 떨어졌습니다. 나는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정그러면 쳐봐라 하고 쳐봤는데 거기도 떨어졌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가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이게 뭡니까?
제일 화가나는것은 나도 여학생친구 사귀고 싶은데 도대체 이게 뭐냔말이죠.

할수 없이 고교진학 포기하고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대입시험공부를 했습니다. 재수생들은 모두 패배의식에 젛어 있었으며 담배도 피우고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생활이었습니다. 1년뒤에 대학시험을 보았는데 또 1차, 2차 모두 떨어졌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죽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때 좋아했던 여자아이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만나자고 하니까 대학에 가면 만나주겠다 하더군요.

도대체 이놈의 입시지옥! 저는 진짜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강에 투신자살하기로 하고 버스를 탔습니다. 집이 수유동이었는데 광화문쯤 왔는데 갑자기 메스껍고 구토가 나왔습니다.

가던 길을 돌려서 집에 온후 병원에 가니까 의사선생님이 빨리 큰병원에 가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 할 수도 있다고...

큰병원에 갔더니 급성간염인데 며칠을 못 넘길수 있다고...

중환자실에 갔는데 옆에 환자들이 죽어서 시체실에 운반되는것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죽고는 싶었지만 그래도 시체실로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갑자기 살고 싶단 욕망이 생겼습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제발..."

의사 간호사분들의 배려와 부모님, 할머님의 간호와 살야야겠다는 의지로 며칠을 넘겨 겨우 고비를 넘겼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화병에 상사병까지 났던 모양입니다.
병실에 누워있는데 때는 3월이었고 창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멋진 교복의 예쁜 여자아이들...

저의 청소년시절은 이리도 암울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입시지옥에 우리 아이들을 다시 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2020년 4월30일
토론토 자유의 기수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