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이야기 3편

나의 인생 이야기 3편

캐나다로 이민가는 두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둘째 : 선진국에가서 정치문화를 좀 배워오자.

나의 인생 이야기 1편에서 제가 인생청사진을 "인생전반부는 엔지니어로, 후반부는 혁명가로 살자"로 그렸다는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됬고 나름대로 성공해서 가족도 일구고 이름도 날리고 조국에 공헌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꺼지지 않는 촛불, 혁명가에 대한 염원은 여전하였습니다.

2000년 당시 한국이 경제발전을 하여 생활은 윤택하여졌지만 교육, 정치 만큼은 후진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판은 흙탕물이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에 교육시스템, 정치문화에 수요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양질의 교육시스템, 양질의 정치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너무 큰데 공급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 공급을 담당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가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캐나다의 교육시스템이 어떤가 경험해보고 또 나도 틈틈이 정치문화를 경험해서 아이들이 큰 다음 시집 장가보내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수요를 충족시키겠다. 그러면 그것이 어렸을때 생각했던 혁명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교육은 혁명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더 이상 입시지옥에 내몰아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뛰놀고 인성을 기르고 사회성을 길러야지 시험기계로 만들고 경쟁제일주의로 길러서는 안됩니다. 캐나다를 보십시요. 사람들이 얼마나 착합니까. 서로 배려하고 살맛 나는 사회 아닙니까? 그게 어디서 나옵니까? 교육에서 나오는것 아니겠습니까?"

"정치, 허구한날 중상모략에 부정에 온갓비리 언제까지 이짓을 하려 하십니까? 캐나다를 보십시요. 정치가 얼마나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국민들은 국가로 부터 보살핌받고 있다고 느끼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정치문화에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중국의 문화혁명하듯이 바꿔야합니다. 제가 캐나다식 정치문화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런 미래의 내모습을 상상해보며 생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답사를 간것입니다. 가는길에 LA에 들려 이민온지 오래된 사촌들을 만났는데 동갑나기 사촌이 극구 말립니다.

"에구, 내가 이민와서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그지 말고 돌아가라 돌아가. 젊어서온 나도 그 고생을 했는데 이나이에 와서 어찌 감당하려 그래?"

나는

"그래?"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습니다.

토론토에 도착하였습니다. 토론토는 먼 친척 아저씨인 박자 송자 택자 되시는 분이 80년대 후반에 총영사를 하셨던 곳입니다. 그분은 은퇴하여 호주로 가셨고 그분의 형님되시는분이 40여년전에 이민오셔서 엔지니어로 일하시다가 은퇴해서 살고 계셨습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 아저씨댁에 와서 머무르라고 하셔서 갔습니다. 예전에 저희 아버님께 신세진게 있다 하시면서...
그분께서는 아들 3형제들을 다 훌륭히 키우시고 은퇴하셔서 조용히 사시고 계셨습니다.

"나는 이민 올때 비행기값도 없어서 빌려서 오고, 와서 일해서 갚고 했다. 요즘 한국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다들 돈 싸가지고 와서 오자마자 집도 사고 하더구나."

하시며

"한국이 이렇게 발전되어서 고맙다."

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고마우시다는 말씀이신지...
아마도 옛날에는 못갖던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이제는 가지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이신것 같습니다.

SIN(Social Insurance Number), 운전면허증, 영주권 카드등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서 일자리에 대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다들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듭니다.

"작년까지만해도 Y2K때문에 IT인력을 좀 뽑았는데... 올해부터는 알짤없으니 포기하슈. 하늘의 별따기라오"

나는

"그래요? 제가 그럼 한번 어떻게 취직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했습니다.

토론토에 와보니 뿌연하늘에 밀집된 대도시, 정말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전원적인곳, 그런곳을 찾았습니다. 런던이란곳을 가봤는데, 거기도 별로 였습니다.
날씨 화창하고 단풍이 찬란한 그런 10월 어느날, 킹스턴이란 곳을 가봤습니다.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터를 잡기로 하고 가족들을 불렀습니다. 가족은 12월 어느날 눈이 엄청 많이 내리는 날에 왔습니다. 자동차 와이퍼에는 눈이 덕지덕지 얼어 붙어 앞도 안보였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속도를 좀 줄이려고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는데,

"어?" 

차가 미끄러져 180도 뺑그르르 돕니다.

"아이고,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있는데 저 뒤에서 큰 트레일러 트럭이 이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눈감고 처분만 바라고 있는데 다행이 그차가 옆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아이고, 살았구나! 아니 ABS가 있는차인데도 이래?"

하고 있는데, 옆에서 와이프가

"이게 환영 이벤트야?"

라고 한마디 합니다.

캐나다의 겨울은 춥고, 길고, 그리고 눈도 엄청나게 왔습니다. 처음 며칠은 낭만처럼 느껴졌는데, 열흘도 넘게 계속오니까 그때는 지겨웠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도 하나 없고 이역만리 낯선곳에 와서 갇혀 있다보니 너무 외로웠습니다. 고적감, 적막함 바로 그거였습니다.

빨리 일자리를 찾던지 해야겠는데 맨날 눈치우느라고 아무일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눈은 쌓여서 1미터도 넘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돈만 까먹고 있다보니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리고 영어발음 듣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외국인회사에 다녔지만 그 외국인회사가 독일회사였기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사람들 영어 발음은 한국사람보다도 더 담백합니다.

북미주 영어의 발음은 제가 17여년 사용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어떤 기술과목 학원에 다니면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해서 집에 와서 듣고 또 듣고 자면서까지 귀에 꼽고 들었습니다.

캐나다는 4월까지는 겨울이었습니다. 5월이되어서야 조금 날씨가 풀렸습니다.

그리고는 취업작전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인이 캐나다에 늦은 나이에 이민와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던 그 취업 스토리는 YouTube에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핵심은 캐나다에서의 취업은 한국과 달리 첫째도 인맥(Network), 둘째도 인맥(Network), 세째도 인맥(Network)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인맥의 성격이 한국과는 좀 다르지만 말이죠. 안보신 분은 한번 시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좋아요, 구독버튼 잊지 마시고요...

2020년 5월1일
토론토 자유의 기수

(4편에 계속)